“I can think infinity. But I can’t count up to one hundred thousand.”
“나는 무한을 생각할 수 있다. 하지만 나는 10만까지 셀 수 없다”
-Morton, Timothy (2013). Hyperobjects
전지구적 기상현상, 양자요동, 우주선(cosmic rays) 분포, 세계 도처에서 반복재생되는 디지털 오디오 샘플들... 이 세상의 대부분의 현상들은 우리의 인식작용(noesis)의 한계 범위를 넘어서 증식하고 분포하고 있다.
우리는 무한은 상상할 수 있지만, ‘막대한 유한’의 규모를 가지는 현상은 상상하기 힘들며, 그 부분으로서만 감각하거나 파악할 수 밖에 없다. 이는 극대 방향 뿐만 아니라 극소 방향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.
무수한 센서들과 데이터, 수학 공식들로 무장한 기계가 대신 그 전체 현상들을 분석, 정규화, 요약 그리고 전달해 주는 지금, 우리는 전체로서의 극소 또는 극대의 초객체를 흐릿하게나마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.
그것을 통해 우리는 범인이지만 과거 기준 초인의 통찰력을 가지게 되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면, 또한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혁신적인 시적 영감이 발생할 수 있을까?
이 프로젝트에서는 3개의 시리즈 작품을 통해 초월-증식-분포와 인간의 일반적 인식범위 밖에 있던 정보를 감각하는 것을 통해 발생하는 초인식작용(hyper-noesis)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.
류필립, 〈천둥 동시성〉 전 기간, 문화역 284, 1층
금속판, 모터, 공명 및 우퍼 스피커, 콘택트 마이크, LED 조명, 각 220×100×100cm
이 작품은 현재 전 지구에 걸쳐 발생하는 천둥을 부분이 아닌 그 전체 객체로서,
즉, 모두 동시에 감각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에 대해 탐구한다.
특수 타악기인 썬더 시트(thunder sheet)를 닮은 9개의 금속 판들은 세 개씩 그룹을 지어: 입장했을 때 기준 왼쪽이 아시아, 가운데가 유럽/아프리카, 그리고 오른쪽이 아메리카를 담당한다. 전지구적 기후 실시간 데이터 스트림을 이용해, 현재 지구 어딘가에서 번개가 발생하면 전시장의 대응되는 3개의 조명 중 하나가 점멸한다. 또한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해당 장소를 담당하는 금속 판 3개 중 한개가 울리며 작은 천둥소리를 만들어낸다.
작가는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천둥 소리 및 번개현상의 극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왔다. 그러나 그 청-시각적 경험을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길 뿐, 원시인들과 같이 그것을 숭배하거나 초자연현상으로서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. 이처럼 인류의 인지력 확장에 따라 천둥은 더이상 초자연현상이 아니게 되었으며, 그 객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. 작가는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앞으로도 유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. 미래에 진보된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 감각이 더욱 확장되었을 때, 마침내 전지구의 천둥이라는 객체를 일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이해하고 더욱 활발히 미적으로 탐구하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.
류필립, 〈극대 극소 정규화〉 전 기간, 문화역 284, 2층
3채널 비디오, 컬러, 4채널 사운드, 양자난수생성기, 실시간 비디오 스트리밍, 우주선 검출기, 가변크기
이 작품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규모를 가지는 현상들 간의 ‘숨겨진 사태 (a hidden state of affairs)’를 탐구한다.
이 작품의 양자난수생성기에서 발생하는 극소의 양자영역 현상과 우주선 검출기 신호의 기원인 우주 천체의 거시적 활동은 인간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. 이 정보들은 절대 인간이 자신의 의도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. 인간 세상에서 아무리 분란과 노이즈를 만들어 낸다 하여도, 천구는 그대로 자신의 우아하고 순수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고, 양자는 원래 자신이 하던 그대로 요동한다.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영향을 끼지치는 못해도 존재를 알고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.
해당 세계로부터 온 정보들은 지금 이 작품에서 테크놀로지의 힘을 통해 정규화되어 물성(materiality)을 부여받고 흥미로운 청-시각 패턴을 만들어내게 된다. 그 사이에 인간이 직관으로 파악하기 힘든 거대한 객체지만 물리적으로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 세계 즉, 지구 표면 촬영 실시간 영상이 존재하고 있다.
극단적인 규모 차이 때문에 같은 법칙과 동급의 강도로서 관계될 수 없는 이 세 가지 세상들은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지금 이곳에서 만나, 관람객의 초인식작용(hyper-noesis) 속에서 병치되고 연관되어 조화로운 패턴을 만들어 낸다. 이는 ‘숨겨진 사태’를 인지하게 된다고 부를 수도 있고, 동양철학에서 명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깨달음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.
류필립, 〈증식적-반향적 진동〉 11월 25일, 문화역 284, 1층
렉처 퍼포먼스, 1채널 비디오, 컬러, 2채널 사운드, 약 12분
인공지능기반 소리 재생산 프로그램을 이용한, 무한 재생산을 다룬 퍼포먼스 작품이다.
이 퍼포먼스에서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사운드는 작가가 개발한 디퓨전 모델(diffusion model)기반의 미세변주(micro-variation) 알고리즘과, 기존에 존재하는 물리 공간 울림 재현 시스템을 이용해 계속해서 재생산되며 음악적 패턴을 만들어간다. 그와 동일한 원리로 작가가 입력하는 이미지 또한 계속 재생산되며 변주된다.
녹음 장비 개발 이전에는 동일한 사운드가 두 번 발생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. 스피커, 매질, 공간 등에 내재된 카오스(chaos) 원리가 우리를 완벽히 똑같은 사운드를 두 번 듣는 것을 여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지만, 같다고 느껴질 만큼 유사한 소리를 우리는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. 그러나 사람들의 듣는 환경은 모두 다르고, 원래는 동일하였던 사운드들은 끊임없이 듣는 오디오 시스템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변형된다. 이와 같은 사실을 오마쥬(homage)하고자 이 퍼포먼스에서는 하나의 사운드로부터 파생된 객체들을 다시 모아서 들으면 어떨까에 대해 다룬다. 예를 들면, 인터넷 방송을 통해 사용자들이 들은, 그들의 공간에 울렸던 모든 내 목소리를 다시 합쳐서 들어보면 어떨까에 대해 상상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을 소재로 작품을 진행하기도 한다.
이와 같이 가상 소리 초객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소리의 무한 재생산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.